을사늑약(2)
-
을사오적 이완용 조선을 팔아먹은 방법
조선의 엘리트 이완용 이완용은 고종이 신임한 신하이자 조선의 인텔리 중의 인텔리였다. 병자호란 패배 이후 청나라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청나라를 벗어나기 위해 고종은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고종은 미국과의 교류를 위해 육영공원을 세웠다. 인재 양성을 위한 육영공원은 명문가 자제와 현직 관리 중 선발된 30여 명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이완용은 29살에 육영공원에 자원 입학하여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주미공사 관원 중 한 명으로 선발된다. 하지만 청나라가 주미 전권공사의 철수를 요구하자 고종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공석이 된 주미 전권공사의 자리는 이완용이 차지한다. 이완용은 미국에서 생활하며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하였으며, 미국 공사관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조선으로 돌아온 이완용은 대미 ..
2023.12.16 -
조선사절단 러시아로 향한 이유
1896년 2월 11일, 조선의 왕인 고종과 왕세자는 일본군을 피해 러시아 공관으로 향한다. 왜 그들은 조국인 조선 땅을 벗어나 러시아로 향해야 했을까? *아관파천 :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왕세자가 일본군의 위협을 피해 1년 넘게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간 사건 *파천 : 왕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일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이유 1894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쟁이 발발한다. 이 청일전쟁의 승자가 된 일본은 1894년 경복궁을 불법 점령하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조선의 내정까지 간섭하며 영향력을 뻗친다. 일본의 극심한 내정 간섭으로 고종의 숨통이 조여가던 그때, 경복궁에서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다. 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여야 했을까? 고종과 명성황후는 일본을 ..
202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