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2)
-
가야의 왕족 출신 김유신, 신라의 영웅이 되다
김유신 가문의 역사 가야는 소국이 뭉쳐 만든 연맹 국가로 김유신 가문은 지금의 김해인 금관가야 출신이었다. 금관가야는 42년 김수로왕이 세웠으며 가야연맹의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며 크게 성장하였는데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인 구해왕은 금관가야 제10대 왕이었다. 구해왕이 집권하던 6세기경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신라가 영토 확장을 위해 가야연맹을 공격해 왔고 이를 견디지 못한 구해왕은 백성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신라에 항복한다. 신라의 법흥왕은 구해왕의 항복을 받아들이며 그와 가족들에게 신라 진골의 신분을 내린다. 신라의 신분제인 골품제는 골과 두품으로 혈통을 구분하여 골은 왕족, 두품은 일반 귀족 및 평민을 상징하였는데 구해왕은 법흥왕의 배려로 신라에서도 왕족 급에 해당되는 신분을 받으며 가야 왕족으로서 예우받..
2024.01.06 -
의자왕과 김춘추 백제 신라의 역사
660년 7월, 700년의 백제 왕조가 멸망하였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은 여인에 빠져 삼천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의 멸망을 부른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와전된 기록이라고 한다. 사실 백제에는 삼천 명이나 되는 궁녀가 없었다. 7세기 백제의 수도 사비성에 거주했던 인구는 약 5~6만 명. 전체 인구 중 1/20에 해당하는 삼천 명이 궁녀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마 삼천이라는 숫자는 단지 많다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의자왕은 옳을 의, 사랑 자로 의롭고 자비로운 왕이란 뜻이다. 왕은 본래 본명과 후대에 불리는 시호가 다른데 의자왕은 본명이 의자이다. 의자왕이 백제의 마지막 왕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 후 이름을 지어줄 신하가 없어 본명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의..
202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