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6. 15:01ㆍ한국사
김유신 가문의 역사
가야는 소국이 뭉쳐 만든 연맹 국가로 김유신 가문은 지금의 김해인 금관가야 출신이었다. 금관가야는 42년 김수로왕이 세웠으며 가야연맹의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며 크게 성장하였는데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인 구해왕은 금관가야 제10대 왕이었다. 구해왕이 집권하던 6세기경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신라가 영토 확장을 위해 가야연맹을 공격해 왔고 이를 견디지 못한 구해왕은 백성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신라에 항복한다. 신라의 법흥왕은 구해왕의 항복을 받아들이며 그와 가족들에게 신라 진골의 신분을 내린다. 신라의 신분제인 골품제는 골과 두품으로 혈통을 구분하여 골은 왕족, 두품은 일반 귀족 및 평민을 상징하였는데 구해왕은 법흥왕의 배려로 신라에서도 왕족 급에 해당되는 신분을 받으며 가야 왕족으로서 예우받는다. 이후 가야연맹은 신라에 병합되고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로부터 22년 후인 554년, 신라 진흥왕 재위 시절 백제가 신라의 요충지인 관산성을 습격한다. 지금의 옥천인 관산성은 백제와 영토 전쟁의 요충지로 신라는 주도권을 뺏기지 않게 총공세를 펼친다. 이때 관산성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선 장군 김무력은 구해왕의 셋째 아들이다. 가야 항복 이후 신라 대표 장군으로 활약한 김무력은 3만 명의 백제군과 성왕까지 물리치는 활약을 펼치며 신라의 신흥 무장 가문으로 명성을 떨친다.
신라의 영웅 김유신의 탄생
김무력의 아들 김서현은 신라 왕족인 만명과 만나게 된다. 만명의 아버지인 숙흘종은 진흥왕의 친동생이었는데 숙흘종은 가야 혈통인 김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딸을 집에 가두고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만명은 몰래 집을 빠져나와 김서현과 함께 만노군(진천)으로 도망쳐 아들을 낳고 이름을 김유신이라 지었다. 이들은 만노군에서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거처를 옮겼고 15살이 된 김유신은 화랑도에서 수많은 낭도를 이끌며 두각을 나타낸다. 김유신은 18살에 화랑을 대표하는 총지도자 국선이 되고 신라 진골 귀족인 김춘추를 만나게 된다.
화랑도 : 교육, 군사적 기능을 하며 유사시 전쟁에 참여하는 신라의 인재 양성 단체
김춘추와 김유신의 만남
김춘추는 신라 정통 왕실 혈통의 최상위 계층이었다. 하지만 김춘추의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귀족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조카인 진평왕이 왕위를 계승하며 쫓겨난 왕의 후손인 김춘추는 왕위 계승이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김유신은 진평왕이 아들이 없고 정통 왕위 혈통인 김춘추가 훗날 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김춘추를 통해 신라 이인자의 자리를 꿈꿨다.
두 사람은 김유신 집 앞에서 축국(축구)를 즐겼는데, 경기 중 김유신이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옷이 뜯어진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집으로 초대하고 홀로 있는 김춘추에게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인 문희가 찾아간다. 김유신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하기 위해 일부러 꾸민 계획이었다. 김유신의 계획대로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김춘추와 결혼도 하지 않은 문희가 임신하자 김유신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라며 문희를 장작불에 태우려 하고, 김춘추가 책임지겠다고 하여 문희는 목숨을 부지한다. 하지만 이 화형식 역시 김유신의 계획이었는데 김춘추와 문희는 서로 사랑했지만, 가문의 출신 때문에 결혼은 어려웠던 관계였다. 왕실의 정식적인 허락을 받기 위해 김유신은 덕만공주(선덕여왕)와 김춘추가 집 앞을 지나갈 때를 노려 불을 지피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식을 들은 덕만공주가 김춘추에게 문희를 구하라고 한 것이다. 김유신의 바람대로 김유신은 신라 왕족 김춘추와 사돈을 맺는다.
7세기 초 어느덧 35살 신라의 장수가 된 김유신. 신라는 북쪽으로 영토 확장을 꾀하며 고구려 선제공격을 결심한다. 하지만 고구려의 요충지인 낭비성에서 신라는 크게 패하자 상심한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김유신은 혼자 적진으로 돌격하여 장군의 머리를 베어 가져온다. 홀로 고구려 진영에 들어가 고구려 장수의 목을 베어 돌아온 김유신을 본 신라군은 기세를 올려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고 고구려군 5천여 명 전멸과 낭비성 함락의 대승을 이뤄낸다. 김유신의 데뷔전인 낭비성 전투는 한강 유역을 두고 백제와 신라가 벌인 중요한 전투였는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신라 장군 김유신이 낭비성을 격파하다'라고 기록된 것은 김유신이 총대장이 아님에도 그의 이름이 대표로 기록될 정도로 고구려에서 이름을 떨쳤다고 볼 수 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고비
632년 선덕여왕이 즉위하며 자신을 도울 인재로 김유신과 김춘추를 뽑는다. 전쟁과 군사 담당인 김유신과 정치 외교 담당의 김춘추는 중앙 정계를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선덕여왕 즉위 11년 후, 백제 의자왕이 즉위하며 신라를 총공격 시작한다. 신라는 백제와의 국경 부근 40여 개의 성을 빼기고, 신라 수도인 경주로 오는 통로 격인 대야성까지 함락되며 최대 위기 상황을 맞는다. 신라 조정에서는 김춘추를 강하게 비난했는데 대야성 성주 김품석은 김춘추의 사위로 김품석이 허무하게 대야성을 빼앗겨 김춘추를 비난한 것이다. 또한 당시 대야성은 옛 가야 영토로 김유신의 세력 기반이기도 했는데 대야성 전투의 패배로 김유신과 김춘추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백제는 김춘추를 모욕하기 위해 딸 고타소의 시신을 백제 감옥에 묻었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자 사위와 딸을 잃은 김춘추와 조카를 잃은 김유신은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한다.
642년 김춘추는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한다. 군사를 요청하기 위해 고구려를 방문한 김춘추에게 연개소문은 한강 땅을 주면 신라를 도와주겠다고 요구하고 김춘추가 거부하자 감옥에 가둬버린다. 김춘추의 소식을 들은 김유신은 신라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진격한다. 김유신이 최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고구려 국경까지 진격하자 고구려는 김춘추를 돌려보낸다. 다행히 김춘추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고구려 동맹은 실패했고, 명예 회복을 위해 김유신은 백제와의 결전을 준비한다.
선덕여왕이 김유신에게 맡긴 곳은 압량주(경산)로 신라의 최전방이었다. 압량주를 지키게 된 김유신은 필사적으로 전쟁에 임하며 대야성 주변 영토를 수복까지 한다. 김유신은 백제를 상대로 연전연승하며 김유신과 김춘추는 다시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그런데 647년 선덕여왕 재위 16년 비담이 귀족들을 모아 난을 일으킨다. 비담은 상대등으로 귀족 연합을 이끌며 귀족회의를 주재한 신라 최고 관직이었다. 비담과 반란파들은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여주불능선리를 내세우며 선덕여왕을 몰아내기 위한 난을 일으킨다. 당시 선덕여왕은 병 때문에 건강이 악화하여 있었고, 선덕여왕의 후계자 역시 사촌 동생 승만 공주라 비담은 차기 여왕이 즉위하는 것을 막고 정권을 잡으려고 하였다. 김유신은 왕실 군대의 선봉에 서 반란군과 대립하며 3km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수일간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김유신은 반란군을 제압하며 비담 등 귀족 30명을 참수형에 처하고, 반란 중 선덕여왕이 승하한 후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며 왕실은 다시 안정을 찾는다.
나당연합,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김춘추는 당나라로 향한다. 당시 당나라는 당태종이 군림하는 아시아 최고 강대국이었다.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 연합인 나당동맹이 맺어지고 엄청난 외교적 성과를 거둔 김춘추는 신라로 돌아온다. 김유신은 신라에서 백제에 함락당했던 대야성을 되찾으며 김품석과 그 부인의 뼈를 고향으로 들고 온다. 654년 선덕여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던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진덕여왕의 가장 가까운 조카인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한다. 김유신 역시 66세의 나이에 최고의 자리인 상대등에 오르며 660년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백제를 총공격한다. 당나라 군사와 함께 사비성을 공격하여 백제는 항복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백제 멸망을 이뤄낸다. 숙원이었던 백제 멸망의 꿈을 이룬 김춘추는 이듬해 661년 사망하고, 668년 신라는 고구려까지 멸망시키며 김유신은 7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김유신은 비록 가야 혈통이지만 평생 신라를 지킨 명장으로 공로를 인정받으며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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