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9. 14:58ㆍ한국사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
이성계의 집안은 홍건적과 왜구로부터 고려를 지킨 영웅가문이다. 이성계는 고려 변방의 떠오르는 신흥 무신이었는데 권문세족의 영향으로 중앙 정계 진출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권문세족 집안의 딸인 강 씨와 결혼하며 이성계는 무력, 경제력, 명예까지 갖춘 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성계는 첫 번째 아내 한 씨와 8명, 두 번째 강 씨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집안에서 자신 무신의 한계를 극복한 문신이 나와 집안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이성계는 아들 중 가장 총명했던 한 씨의 아들 이방원을 8살에 개경으로 유학을 보낸다. 어린 나이에 타지로 유학을 떠나게 된 이방원은 유학 동안 강 씨의 집에 머물게 된다. 강 씨는 이방원을 친아들처럼 챙기고 아꼈는데 이런 강 씨의 마음을 느낀 이방원 또한 강 씨에게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가족으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받은 이방원은 17살에 과거에 급제한다.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내 뜻을 이룰 사람은 반드시 너일 것이다'라며 이방원에 대한 큰 기대와 애정을 보였다.
이방원은 아버지인 이성계가 요동 정벌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 고려로 돌아오며(위화도회군) 한순간에 역적의 가문이 되자 친어머니 한 씨와 강 씨를 구해내며 가족이 인질로 잡히는 것을 막아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다. 이후에도 고려가 급진개혁파인 이성계와 온건개혁파 정몽주 두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몽주가 이성계와 그의 측근 세력을 제거하려고 하자, 이방원이 눈치채고 정몽주를 제거한다. 그런데 반대 세력인 정몽주의 죽음에 이성계는 이방원을 크게 나무란다. 사실 이성계는 정치 경험도 풍부하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고려의 대학자인 정몽주를 끝까지 설득해 함께 새로운 나라를 이끌고 싶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분노하고, 이방원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뜻하지 않게 아버지에게 외면받기 시작한다.
이성계가 세운 나라, 조선
정몽주의 죽음 이후 조선 건국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드디어 1392년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다. 이성계는 세상을 떠난 첫째 부인 한 씨 대신 두 번째 부인 강 씨를 왕비로 세운다. 전장에서 공을 세운 아들 이방과나 이방번에게 정 3품의 지휘 관직을 하사했지만 정작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이방원은 아무런 직책도 받지 못하고 왕자가 된 다음 날 개경을 떠나야 했다. 이성계는 정몽주를 해친 이방원을 계속 경계하고 있었으며 조선 개국의 공은 부인인 강 씨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이성계는 두 번째 부인인 강 씨와의 첫째 아들 이방번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는데 신하들은 이를 거부하며 한차례 소동이 벌어진다. 신하들은 첫 번째 부인인 한 씨의 아들인 이방과(2)나 이방원(5)을 책봉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는데 이성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밖에서 이를 듣고 있던 강 씨가 대성통곡을 하며 제 아들이 세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좀처럼 이성계와 신하들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결국 한 신하가 강 씨의 둘째 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제안한다. 이방번은 부인이 고려 왕 씨 집안이라 자신들이 제거했던 고려의 잔존 세력과 연합할 우려가 있으니 동생인 이방석을 추천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적장자도 아니고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우지도 않은 11살의 강 씨의 둘째 아들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된다.
조선의 첫 세자 책봉에는 둘째 부인인 강 씨와 조선의 2인자격인 정도전이 개입되었다. 강 씨는 권문세족 출신으로 이미 정계에서 힘을 펼치고 있었고 제 아들이 훗날 조선의 왕이 되기를 바랐다. 정도전은 왕 중심이 아닌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는데 자신의 정치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의 세자 책봉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충분히 세자로 거론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친아들처럼 아껴줬던 강 씨와 스승이자 벗이었던 정몽주에게 무시당하며 개경에서 쫓겨나듯이 나오게 된다.
이방원은 개경을 벗어나 변방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명나라로 갈 것을 요청한다. 명나라가 1년에 3회 이상 진행하던 외교를 3년에 1회로 줄여 조선은 급히 사신을 보냈지만, 입국조차 거부된 것이다. 이때 이성계는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총명했던 이방원을 떠올렸고, 이방원은 자신이 인질이 될 위험을 감수하며 아버지의 명을 받아 명나라로 떠난다. 여러 위험이 많았지만, 이방원은 성공적으로 외교를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공을 인정받지도, 중앙 정계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여전히 변방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던 1396년, 신덕왕후 강 씨가 사망한다. 강 씨의 죽음은 조선에 또다른 변화를 일으켰는데 정도전은 제게 위협이 되는 세력을 사병 혁파로 무력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방원 또한 사병은 물론 무기까지 모두 뺏긴다. 신덕왕후가 떠난 후 정도전이 점점 자신을 벼랑 끝에 몰자 이방원은 결국 왕자의 난을 계획한다. 이방원은 사병 혁파에 불만을 품은 세력과 함께 세자를 바꾸기 위한 병사를 계획한다.
그러던 중 이성계의 병세가 깊어져 왕자들은 모두 궁으로 소집당한다. 이방원 역시 궁으로 향했는데 시종이 전한 부인이 아프다는 소식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아프다던 이방원의 아내는 멀쩡히 이방원을 맞이하며 정도전이 전하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 왕자들을 모아 해치려 하니 궁에 가지 말라고 한다. 이방원은 이 소식을 듣고도 형제들과 함께 궁으로 들어간다. 궁으로 들어간 이방원은 궁궐의 등불이 모두 꺼져있는 것과 시중을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에 이상함을 느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궁궐을 도망친다. 집으로 돌아온 이방원에게 소식을 들은 아내 민 씨는 사병혁파가 시작되자 창고에 숨겨둔 갑옷과 무기를 알려주고 이방원은 본격적으로 왕자의 난을 준비한다.
이방원의 아내 민 씨는 사병 혁파가 시작되자 창고에 갑옷과 무기를 숨겨두었고 이방원은 무기를 챙겨 제일 먼저 정도전에게 향한다. 정몽주가 이성계의 세력을 유배 보내려고 할 때 그중 하나였던 정도전을 이방원이 구해줬었다. 자신의 정치 야망을 위해 은인을 끌어내리던 정도전은 이방원을 보자 저번처럼 또다시 자신을 살려달라고 말한다. 복수심에 가득 찬 이방원은 수하를 시켜 그의 목을 처참히 베어버리고 자신에게 방해가 될 강 씨의 아들마저 모두 제거하고 세자 자리에 자신의 형 이방과를 올린다. 자식이 없던 형 이방과가 세자로 책봉되면 명분도 살리고, 자신이 차기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방과는 이방원이 왕이 되기 위한 그저 보기 좋은 허울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방원에게 불만을 품은 세력도 있었는데, 이방원은 자신이 조선의 3대 왕이라고 주장하는 이방간을 아주 쉽게 제압하며 조선의 3대 왕 태종으로 즉위한다.
이방원에게 남은 마지막 복수의 대상은 강 씨였다. 이방원은 강 씨를 친어머니처럼 따랐지만 강 씨는 자기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철저히 이방원을 정계에서 배척하였다. 강 씨는 이미 죽었지만 이방원은 오랜 숙적인 강 씨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인 이성계가 죽자 이방원은 덕수궁 옆의 강 씨의 봉분을 깎아 무덤의 흔적을 지우고 산기슭으로 옮긴다. 그리고 정식 왕비가 아닌 후궁으로 강등시키며 무덤 역시 능이 아닌 묘로 격하시킨다. 이방원의 복수의 흔적을 현재에도 찾아볼 수 있는데 청계천의 광통교이다. 마을에 홍수로 다리가 무너지자 강 씨의 묘에 사용되었던 돌을 사용하여 광통교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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