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의순공주 오랑캐의 아내가 되다

2023. 11. 24. 23:58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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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충친왕(도르곤) 출처 : 위키백과

 

1649년 조선의 17대 왕으로 효종이 즉위한다. 효종의 아버지인 인조는 오랑캐라 얕잡아보던 청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치욕스러운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게 된다. 효종은 이때의 봉림대군이다. 병자호란 13년 후 청나라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도르곤이 조선의 여인과 혼인하겠으니 신붓감 후보를 보내라고 요구한다. 병자호란의 여파로 청에 복종해야 했던 조선은 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청나라의 섭정왕인 도르곤은 청나라의 최고 실세였다. 당시 청나라 황제 순치제는 6살이라 삼촌인 도르곤이 권세를 누리고 있었으며, 그의 다섯 번째 아내가 죽은 후 조선에서 여섯째 부인을 찾으려고 한다. 청나라는 정복했던 나라의 군주의 딸을 비로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는데, 주변국들에 대한 과시욕과 청나라가 천하를 지배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섭정왕 : 군주가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군주를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

 

도르곤의 신붓감 후보

효종에게는 6명의 딸이 있었는데 청나라에서 온 칙서에는 신붓감으로 공주를 포함한 왕실 및 대신의 딸도 가능하다고 하자 효종은 신붓감 후보를 왕실 종친부터 대신 딸까지 늘려 그 수가 약 300명이 되었다. 하지만 딸을 내놓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청나라와 사돈 맺는 것을 치욕이라 여겼다. 청나라가 신붓감을 요구한 지 2일째, 계속되는 청 사신의 요구에 결국 금림군이 자 딸이 자색이 있다며 후보로 적절할 것이라며 나선다. 금림군은 효종의 9촌 친척이었는데, 효종실록에는 이개윤이 직접 딸을 추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아마 이개윤 딸이 어여쁘다는 소문을 듣고 효종이 공주를 보내지 않기 위해 점찍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청나라 실권자의 신붓감에 후보가 1명이라면 조선에 무시당한다고 여길 수 있어 효종은 대신들에게 딸을 숨긴 자는 처벌할 것이라며 신하들을 더욱 압박한다. 그렇게 어렵게 후보 20명을 모았으나 청나라 사신은 30~40명을 요구하며 적합한 자가 없으면 돌아가겠다고 협박한다. 결국 긴 실랑이 끝에 청나라 사신은 20명의 신붓감을 보기로 하는 데 여인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청나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런데 사신이 돌아간 후, 청에서는 다른 사신을 조선에 보낸다. 화를 내고 돌아간 청나라 사신은 사실 효종과 신하들에게 혼란을 줘 조선을 압박하려던 목적이었다. 뒤이어 내려온 청나라 사신은 20명의 여인 중 16세 한 여성을 신부 후보로 지목하는데 청나라 사신이 고른 16세 여인은 이개윤의 딸 이애숙이었다. 효종은 10촌 고모뻘 되는 이애숙을 양녀로 삼아 조선의 공주라고 소개하며 호를 옳을 의, 순응할 순을 써 나라 뜻을 위해 순순히 따르다는 뜻 의순공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의순공주는 작호를 받고 한 달 뒤 청으로 떠나게 되고, 효종은 의순공주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인 이개윤의 품계를 올려주고 의순공주의 두 오빠는 벼슬을 받는다.

 

도르곤은 청으로 온 의순공주를 보고 하얀 매처럼 아름답다며 백송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의순공주는 16살에 39살의 도르곤의 여섯 번째 아내가 된다. 그런데 의순공주가 떠나고 4달 뒤 조선에는 청에서 의순공주가 아름답지 않고 시녀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힐책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청나라 사신을 통해 알게 된 도르곤의 속내는 다른 미녀를 더 보내라는 것이었다. 효종은 청나라에 복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며 속내는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나라 사신은 도르곤이 효종을 의심하니 조선에서 새로운 여인을 더 보내면 이 의심을 풀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한다. 힘없는 조선은 결국 청나라로 보낼 여인을 다시 모집한다. 조선은 남성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나라의 위기에 여성의 희생을 강요했던 시대적 배경도 존재한다. 

 

의순공주의 귀국

도르곤이 사냥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청나라로 향하던 조선의 여인들은 다행히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의순공주는 남편을 잃게 된다. 의순공주는 도르곤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도르곤이 황제의 자리를 넘본 역적이 되며 한순간에 역적의 아내가 된다. 역적의 재산을 몰수했던 청나라는 의순공주 역시 재산으로 취급하여 다른 남자에게 보낸다. 의순공주가 보내진 곳은 도르곤의 부하로 청나라의 새로운 실세가 된 보로였다. 그런데 의순공주가 보로에게 시집간 지 7일 만에 보로가 사망하고 만다. 역적의 아이를 낳고 새 남편까지 잃은 의순공주는 돌봐줄 이 하나 없이 외롭게 지낸다. 그러던 1655년, 조선의 사절단 중 한 명으로 청나라에 간 이개윤이 황제에게 딸을 돌려달라는 글을 올리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의순공주는 조선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의순공주는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아버지인 이개윤은 모든 관직을 뺏기며 도성 밖으로 쫓겨난다.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에 지내다 온 의순공주는 조국에서 남은 생을 오명과 손가락질만 받다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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