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궁녀에서 중전이 된 역사

2023. 12. 3. 21:22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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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빈묘_ 출처 : 나무위키

 

1686년 조선 19대 왕 숙종에게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당시 조선에는 수해와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신하들은 그 원인을 숙종이 한 여인을 총애하기 때문이라 여겼다. 숙종이 빠진 여인은 궁녀 장희빈으로, 일개 궁녀 때문에 여러 번의 상소가 올라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희빈 궁녀가 되다

장희빈은 역관 집안의 막내딸로 중인 신분으로 태어났다. 양반까지는 아니었지만 유복하게 자란 장희빈은 갑자기 아버지의 사망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어머니에 의해 궁으로 보내진다. 장희빈은 실록에 미모가 언급된 유일한 궁녀로 외모가 상당히 빼어났는데, 어여쁜 장희빈에게 숙종은 첫눈에 반한다. 장희빈은 승은 궁녀가 되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숙종의 친어머니인 명성왕후는 장희빈을 간사하고 악독하다고 말하며 궁에서 내쫓는다. 사실 숙종의 집권 시기에는 서인과 남인의 당파 대립이 있었는데, 서인 세력의 명성왕후가 남인 세력인 장희빈을 쫓아내 반대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 숙종은 어머니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숙종은 인현왕후와 혼인한다. 숙종의 두 번째 부인인 인현왕후는 성품이 온화하고 중전으로서의 체통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숙종이 장희빈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과 승인을 입은 궁인을 민간에 머물게 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며 명성왕후가 사망한 후 숙종에게 장희빈을 다시 궁으로 들일 것을 제안한다.  

 

*승은을 입다 : 왕과 궁녀가 하룻밤을 보내다.

**승은을 입은 궁녀는 일반 궁녀가 하던 업무에서 제외되며 후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정1품에서 종4품까지 높은 품계를 받아 왕의 공식 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신분 상승의 중요한 기회였다. 

궁으로 돌아온 장희빈

숙종은 장희빈과 재회한 후 인현왕후의 중궁전에 발길을 끊어버린다. 숙종은 장희빈을 위해 별당까지 따로 지어줬는데 당시 조선은 가뭄, 장마, 홍수, 지진의 수많은 재해가 닥쳤던 상황이라 신하들은 돈이 많이 드는 별당 짓기를 멈춰달라고 요청했지만, 숙종은 장희빈을 위한 별당이 아니라고 발뺌하며 신하들의 상소에 굴하지 않는다. 장희빈은 승은 입은 궁녀의 신분에서 종4품 숙원이 되며 정식 후궁으로 인정받고, 숙종의 총애에 정2품 소의까지 단숨에 올라간다. 그렇게 숙종 즉위 15년, 장희빈이 숙종의 첫아들을 낳는다. 숙종은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장희빈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신하들은 원자의 자격은 중전이 낳은 적장자이며, 아직 중전이 아들을 낳을 기회가 충분하다며 반대했지만, 숙종은 결심한 지 하루 만에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세운다. 그고는 장희빈을 정1품 빈으로 임명하여 희빈 장씨, 장희빈이 된다.

기사환국

명망 높은 유력 정치인 송시열이 숙종에게 원자 선정이 성급했다는 상소를 올린다. 서인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송시열은 역대 4대 왕을 모신 원로 대신이었다. 하지만 숙종은 송시열의 상소에 분노하며 그의 관직을 빼앗고 한양 밖으로 추방하며 대대적인 서인 세력 물갈이를 시작한다. 서인이 빠진 자리는 남인 세력으로 채워지며 장희빈에 의해 대대적인 환국이 일어난다. 

*환국 : '국면을 바꾸다' 기존 세력을 다른 세력으로 바꾸다 

궁녀에서 중전이 된 장희빈

숙종은 장희빈을 위해 중전인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기 위해 명분을 찾는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3년 전 얘기해줬던 꿈 '꿈에 선대왕과 명성왕후가 나와 인현왕후와 다른 후궁들은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을 건데 숙원(장희빈)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투기의 증거로 주장하며 인현왕후를 폐비시킨다. 인현왕후는 중전으로써 10년 동안 부덕한 모습을 보인 적 없다며 서인, 남인 가릴 거 없이 인현왕후의 폐비를 반대했지만, 결국 인현왕후는 궁에서 쫓겨나고 4일 뒤 장희빈이 왕비로 즉위한다. 

 

그런데 숙종의 사랑이 변하기 시작한다. 숙종은 장희빈을 두고 인현왕후를 모셨던 젊은 궁녀에게 다시 사랑에 빠진다. 불안감을 느낀 장희빈은 그 궁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가차 없이 매질하고 항아리 안에 가두기까지 한다. 그녀는 숙빈 최씨로 21대 왕 영조의 어머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은 곧 조선 조정에 또 한 번 환국을 일으키는데 서인과 남인이 역모를 꾸민다고 서로를 고발하자 이번에는 서인의 편을 들어준다. 주요 관직을 서인으로 교체하며 장희빈 세력인 남인을 몰아낸다. 당시 장희빈 오빠 장희재의 부정부패 사건이 일어났는데 남인이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무능력한 남인들에 실망하며 환국의 원인이 되었다. 숙종은 인현왕후에게 편지로 사과하며 궁으로 다시 복위시킨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인현왕후가 궁으로 돌아온  숙종은 장희빈을 중전에서 후궁으로 강등시킨다. 인현왕후는 중전으로 다시 복위한 지 7년 만에 후사도 없이 사망하고 숙종은 아주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숙빈 최씨가 장희빈이 신당을 꾸며 인현왕후를 저주한다는 밀고를 듣고 숙종은 장희빈의 처소에서 수많은 화살을 맞아 구멍이 뚫린 인현왕후의 초상화를 발견한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저주로 죽었다고 분노하며 장희빈을 자진하라 명하며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다. 이후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어머니인 장희빈을 중전으로 복위시키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한다. 재위 4년 만에 후사도 없이 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가 즉위한다. 영조의 즉위로 장희빈의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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