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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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과 김춘추 백제 신라의 역사
660년 7월, 700년의 백제 왕조가 멸망하였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은 여인에 빠져 삼천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의 멸망을 부른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와전된 기록이라고 한다. 사실 백제에는 삼천 명이나 되는 궁녀가 없었다. 7세기 백제의 수도 사비성에 거주했던 인구는 약 5~6만 명. 전체 인구 중 1/20에 해당하는 삼천 명이 궁녀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마 삼천이라는 숫자는 단지 많다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의자왕은 옳을 의, 사랑 자로 의롭고 자비로운 왕이란 뜻이다. 왕은 본래 본명과 후대에 불리는 시호가 다른데 의자왕은 본명이 의자이다. 의자왕이 백제의 마지막 왕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 후 이름을 지어줄 신하가 없어 본명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의..
2023.07.10 -
조선사절단 러시아로 향한 이유
1896년 2월 11일, 조선의 왕인 고종과 왕세자는 일본군을 피해 러시아 공관으로 향한다. 왜 그들은 조국인 조선 땅을 벗어나 러시아로 향해야 했을까? *아관파천 :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왕세자가 일본군의 위협을 피해 1년 넘게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간 사건 *파천 : 왕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일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이유 1894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쟁이 발발한다. 이 청일전쟁의 승자가 된 일본은 1894년 경복궁을 불법 점령하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조선의 내정까지 간섭하며 영향력을 뻗친다. 일본의 극심한 내정 간섭으로 고종의 숨통이 조여가던 그때, 경복궁에서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다. 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여야 했을까? 고종과 명성황후는 일본을 ..
2023.07.10 -
뺨 한대로 시작한 쿠데타, 무신정변
벌거벗은 한국사 6화에는 고려시대 무신정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기준이 1592년 임진왜란이라면 고려는 1170년 무신정변이다. 무신정변의 '정변'이란 지배층의 정치 변동이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일어난 사건을 뜻하는데 왜 고려시대 무신들은 정변을 일으켰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이라는 개념은 고려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양반은 무반과 문반을 합친 단어로 무반은 지금의 군인·경찰, 문반은 공무원, 법관, 국회의원 정도라 볼 수 있겠다. 고려 초기만 해도 무반과 문반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았는데 사회가 발전하면서 분업이 중요성이 대두되자 나라의 정치를 맡는 문신과 군사를 이끄는 무신으로 나뉜 것이다. 양반의 서열은 정1품에서 종9품으로 구분하였는데 문신과 무신이 올라..
2023.06.26 -
조선의 수재는 왜 성균관에 모였나
성균관은 成 이룰 성, 均 고를 균, 館 집 관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하는 기관이란 뜻이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수재들 대부분이 성균관 출신이며, 이황은 성균관의 대사성(총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렇다면 성균관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조선의 수재들은 성균관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성균관은 유학을 가르치는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유학의 상징인 공자의 사상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교육기관인 동시에 제사를 지냈던 사당이다. *공자 : 세계 4대 성인이자 유교의 창시자로 인과 예를 강조. 왕세자입학도는 왕세자의 성균관 입학식 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비록 왕세자의 모습을 그릴 수 없어 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스승은 책상 위에 책을 놓고 왕..
2023.06.26 -
관심법 궁예! 왜 왕건의 마음은 읽지 못했나?
통일 신라 시대 이후 900년 무렵, 통일 신라는 세 나라로 나눠지며 후백제, 신라, 태봉(후고구려)의 후삼국 시대가 열린다. 그중 궁예는 태봉을 건국했는데, 그는 자신을 미륵이라 칭했으며, 상대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파죽지세로 주변국을 점령하며 후삼국 시대에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했던 궁예는 가장 믿었던 부하인 왕건에게 쫓겨나는데, 그는 왜 역사에 폭군으로 남아있으며 왕건에게 쫓겨나게 되었을까? 궁예는 누구인가 궁예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후궁의 아들이었던 궁예는 신라의 왕자였지만, 궁궐 밖 어머니의 집에서 태어났다. 이 출생 소식을 들은 궁궐의 일관은 궁예의 탄생을 풀이해 보는데, 탄생일로 보아 불길한 운을 타고난 아이로 나라에 해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 이유는 궁예는..
2023.06.12 -
어우동, 정말 그녀는 죽을 죄를 지었나
매혹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어우동, 사실 양반집 딸이었다? 어우동은 한양의 지체 높은 양반집. 즉, *공신 집안이자 승문원지사(현 외교부 장관)인 박윤창의 딸로 태어난다. 어우동의 본명은 '박구마'로 추측되는데, 당시 조선시대는 여성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명처럼 그녀를 어우동이라 불렀다. 어우동의 뜻은 '같이 어울려 통하다'의 의미이다. *공신 : 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 어우동의 용모는 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성의 외모를 기록으로 많이 남기지 않은 조선에서 직설적인 '아리따웠다'라는 표현을 쓴 걸로 보아 어우동은 상당한 미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돈, 명예, 미모를 다 갖춘 어우동은 혼기가 차자 조선의 왕가와 혼담이 오가며 왕의 현손인 태종 이방원의 증손자, 태..
2023.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