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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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왜 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쳤을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 이성계의 집안은 홍건적과 왜구로부터 고려를 지킨 영웅가문이다. 이성계는 고려 변방의 떠오르는 신흥 무신이었는데 권문세족의 영향으로 중앙 정계 진출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권문세족 집안의 딸인 강 씨와 결혼하며 이성계는 무력, 경제력, 명예까지 갖춘 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성계는 첫 번째 아내 한 씨와 8명, 두 번째 강 씨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집안에서 자신 무신의 한계를 극복한 문신이 나와 집안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이성계는 아들 중 가장 총명했던 한 씨의 아들 이방원을 8살에 개경으로 유학을 보낸다. 어린 나이에 타지로 유학을 떠나게 된 이방원은 유학 동안 강 씨의 집에 머물게 된다. 강 씨는 이방원을 친아들처럼 챙기고 아꼈는데 이런 강 씨의 ..
2023.09.19 -
고려 역사 세계최강 몽골에 맞선 고려인
몽골군이 작은 나라인 고려를 공격한 이유 몽골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나라다. 당시 몽골군은 모든 나라에 공포의 대상이었고, 정복한 지역민들을 포로로 잡아 위장하여 그 규모와 위용을 더욱 키워나갔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영토를 확장하던 몽골이 어느 날 조그만 나라인 고려를 침략한 이유는 고려에 사신으로 보낸 저고여가 고려에 방문 중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고려가 저고여를 죽였다고 생각한 칭기즈칸은 저고여 사망 6년 후인 1231년, 3만의 병력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한다. 고려와 몽골 사이의 전쟁인 여몽 전쟁은 30년간 6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몽골이 저고여 사망 후 바로 침략하지 못한 이유는 당시 서방 원정 중이던 칭기즈칸이 1227년에 ..
2023.09.17 -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다
사도 세자의 탄생 1762년 사도세자의 탄생은 영조의 큰 기쁨이었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42세의 늦은 나이로 얻은 늦둥이 아들이다. 영조는 25살에 효장세자를 얻었는데 효장세자가 10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후계자가 중요한 왕실에서 첫아들을 잃은 슬픔과 후계자가 없어 초조했던 영조에게 효장세자 이후 7년 만에 얻은 아들이었다. 사도세자의 탄생은 영조뿐 아니라 조선의 기쁨이 되었고, 사도세자는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조선 역대 최연소의 세자로 책봉이 된다. 사도는 3세 때부터 왕세자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총명함과 영특함에 영조와 신하들은 한없이 기뻤다고 한다. 사도의 타고남도 있겠지만, 영조는 늦둥이 아들 육성에 총력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영조가 사도의 조기교육에 집착한 이유는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
2023.09.16 -
환관 조선 천민의 신분상승 방법
환관은 왕실의 수족으로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중심이었다. 환관은 왕의 측근으로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누렸는데, 이런 환관이 되기까지 견뎌야 하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양반부터 천민까지 환관이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서의 환관 벼슬을 하는 관리라는 뜻의 환관은 남성성을 상실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조선의 환관은 '내시'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의 환관과 내시는 의미가 달랐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동일해진다. 조선 시대의 환관은 왕실 사람의 시중을 들거나, 왕과 신하 사이에서 나랏일을 수행했다. 노비와 신하들이 있음에도 환관이 필요했던 이유는 왕의 여자들 때문이었다. 왕비와 후궁 외에도 궁궐 내에는 궁녀인 여자들이 많았기에 남성성을 잃..
2023.08.03 -
세종대왕은 왜 며느리 넷을 쫓아냈을까
세종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문종은 공부부터 예체능까지 못 하는 게 없었다. 적장자로 태어난 귀한 왕세자인 문종의 아버지 세종은 문종의 세자빈을 무려 3년간 골랐다고 한다. 문종의 결혼은 조선 건국 이래 첫 적장자를 통한 왕위 계승이자, 정통 왕위 계승으로 유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문종의 첫 세자빈은 당시 군대 최고 지휘관 정3품 상호군인 김오문의 딸이 되었다. 세자빈의 휘빈이란 호를 받아 세종의 첫 번째 며느리가 된 휘빈 김 씨.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2년여 만에 파탄 난다. 결혼 당시 문종은 14세였는데 세자는 15세 봄부터 합방이 가능하였다. 결혼 직후 1년 동안 부부생활은 물론 문종은 휘빈 김 씨를 좋아하지 않아 오히려 궁녀들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뒤 문종..
2023.08.02 -
임진왜란 역사 한국의 도자기를 노린 일본
1592년 비 내리는 새벽, 경복궁을 빠져나가는 가마 행렬에 조선의 14대 왕 선조가 타고 있었다. 일본은 명나라 정벌을 위해 조선에 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고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침공하였다(임진왜란). 90여 척의 배로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단 17일 만에 조선 지방의 성을 차례로 함락시키며 한양의 코앞까지 들어온다. 선조는 평양성에서 국경까지 쫒기다 결국 명나라에 군대를 요청하고 조·명 연합군에 일본군은 경남 해안까지 퇴각하지만 밀려난 곳에서 버틴다. 일본은 조선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명나라에 협상을 요구하는데, 그 협상 조건은 첫 번째, 명나라 황녀를 일왕의 후궁으로 줄 것 두 번째, 조선 8도의 절반인 4도를 일본에 줄 것 등이 있었다. 무리한 요구에 4년간의 논의에도 협의가 되지 않자 159..
202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