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30)
-
장희빈 궁녀에서 중전이 된 역사
1686년 조선 19대 왕 숙종에게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당시 조선에는 수해와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신하들은 그 원인을 숙종이 한 여인을 총애하기 때문이라 여겼다. 숙종이 빠진 여인은 궁녀 장희빈으로, 일개 궁녀 때문에 여러 번의 상소가 올라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희빈 궁녀가 되다 장희빈은 역관 집안의 막내딸로 중인 신분으로 태어났다. 양반까지는 아니었지만 유복하게 자란 장희빈은 갑자기 아버지의 사망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어머니에 의해 궁으로 보내진다. 장희빈은 실록에 미모가 언급된 유일한 궁녀로 외모가 상당히 빼어났는데, 어여쁜 장희빈에게 숙종은 첫눈에 반한다. 장희빈은 승은 궁녀가 되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숙종의 친어머니인 명성왕후는 장희빈을 간사하고 악독하다고 말하며 ..
2023.12.03 -
충무공 이순신은 왜 죽음을 생각했을까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된다. 부산 앞바다로 침입한 일본군은 조선의 지방성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 한성이 함락된다. 하지만 바다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이 연전연승 중이었다. 조선 수군의 승리로 일본의 침략 계획은 차질이 생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급히 정예부대를 남해로 파견한다. 1592년 7월 왜선 70여 척이 조선의 견내량에 모여든다. 견내량은 장소가 협소하고 암초가 많아 전투 중 배끼리 충돌할 위험이 컸다. 이순신은 미끼 조를 견내량에 투입해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적을 유인하는 전략을 펼치고 한산도 앞바다에 들어선 일본 함대 앞에 학익진을 펼친다. 73척 중 59척이 격침되고 왜군 총 100선을 3일 만에 침몰시키며 이순신은 대승을 이뤄낸다. 한산대첩 이후 도요..
2023.11.26 -
조선의 의순공주 오랑캐의 아내가 되다
1649년 조선의 17대 왕으로 효종이 즉위한다. 효종의 아버지인 인조는 오랑캐라 얕잡아보던 청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치욕스러운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게 된다. 효종은 이때의 봉림대군이다. 병자호란 13년 후 청나라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도르곤이 조선의 여인과 혼인하겠으니 신붓감 후보를 보내라고 요구한다. 병자호란의 여파로 청에 복종해야 했던 조선은 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청나라의 섭정왕인 도르곤은 청나라의 최고 실세였다. 당시 청나라 황제 순치제는 6살이라 삼촌인 도르곤이 권세를 누리고 있었으며, 그의 다섯 번째 아내가 죽은 후 조선에서 여섯째 부인을 찾으려고 한다. 청나라는 정복했던 나라의 군주의 딸을 비로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는데, 주변..
2023.11.24 -
킹메이커 한명회, 조선의 왕을 바꾸다
한명회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지략과 처세술, 실행력만큼은 뛰어난 인물이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한명회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음서라는 제도로 38살 늦은 나이에 관직에 오른다. 명문가 집안의 배경으로 경덕궁 궁지기 종 9품 관리직에 오른 한명회는 낮은 직급으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단종의 삼촌인 수양대군이 그를 찾아온다. *음서 :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자식이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제도 수양대군은 왜 한명회를 찾아갔을까?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당시 왕인 단종의 삼촌이었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학문에 뛰어났던 수양대군은 욕망과 정치적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대신들은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에게 위협이 될 세력을 축소하려 하였고, 수양대군은..
2023.11.19 -
광복절 조선인들이 환호하지 못한 이유
1945년 8월 15일. 경성에서는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손자, 의친왕의 장남 이우의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우는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군으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핵폭탄 폭발에 휘말려 34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러나 8월 15일 12시에 진행되기로 한 이우 왕자의 장례식은 갑자기 연기된다. 일본이 12시에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긴급 속보를 내렸기 때문이다. 긴급 속보는 일본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토록 바랬던 광복의 순간, 환호로 가득 찰 거 같았던 경성의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라디오로 전해진 일본의 항복선언이 일본 왕실에서 사용하는 어려운 어휘와 안 좋은 음질로 조선인들이 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 해방..
2023.10.09 -
소현세자, 조국에 환영받지 못하다
1636년 병자년 청나라와의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패하였고, 조선의 왕인 인조는 오랑캐라 부르던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한다. 인조의 첫째아들 소현세자는 조선이 패한 댓가로 청의 요구에 따라 부인과 신하, 신하의 가족들과 함께 청으로 끌려간다. 조선과 청의 관계 조선의 외교는 사대 외교였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긴다는 사대 외교를 펼치던 조선은 명나라를 섬기고 후금(청, 여진족)을 배척하는 사상이었다. 그런데 청나라가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며 명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을 청의 편으로 만드려고 하자, 조선은 이를 거부하였고 청은 조선을 침략해온다(병자호란).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청나라는 조선에 1) 명과의 관계를 끊고 청의 연호를 쓸 것. 2) 청의 출병 요청에 원군을 파견..
2023.10.06